"이곳을 철거 한답니다.
1980년 5월, 그 피빛 절규를 기억하십니까?
이제 시민여러분께서 지켜주십시오." 도철 철거 가상도 CG
내 고향 광주에 잠시 들렀던 6월 어느 날, 도청 앞 분수대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니 와 달라는 지역 민주가족의 숨 가쁜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달려가 보았다.
“어디 불났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518당시 시민군사령부이자 민주민중항쟁 최후의 진지였던 옛 도청 건물 주요부분을 강제철거 하려고 합니다. 광주에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으로서 옛 도청 터를 확장한 5만 여 평에 문화의 전당을 짓기 위해 도청 별관을 헐어야 한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계획에 별관은 헐리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과문하기로서니 내 알기로 “헐리는 것은 도청건물이 아니라 별관이라는 이름의 헛간채로 알고 있는데, 광주시민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던데, 그 무슨 망발이랍니까? 문제의 별관은 그러면 어디에 있습니까?” 하자 분수대 건너편을 말없이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간 시선 끝 전면에 우뚝 선 것은 구 전남도청 본관 증축건물 아닌가. “아니 저 큰 건물이 어떻게 왜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까?” 몹시 당황스러 물었더니 “518의 가장 주요 상징인 <본관 증축건물>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별관>이라고 부르면서 없애버리려고 하기에 시민들에게 <없애려는 별관이 바로 이것>임을 알리려고 우리 유족들이 검은 천을 빙 둘렀습니다. 저곳은 5월의 해방광주 기간 내내 도청 지휘부로도 쓰였고 5월 27일 새벽에는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보루였습니다.”고 한다.
“아니 저 건물은 피를 뿌리고 산화해 가신 민주영령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진 곳인데, 저 건물이 문화의전당 설계를 공모할 때 미리 제외 되었다고? 누가 정부를 음해코자 지어낸 유언비어 아니오? 별관이란 또 어떻게 해서 생겨난 이름이오?” 한 편으로는 묻고 또 한 편으로는 다시 바라보아도 철거한다는 말이 믿기지를 않았다.
그러나 ‘옛 본관 증축건물을 제외하고 설계하라는 설계지침’도, ‘별관이라고 이름 붙인 옛 본관 증축건물 철거’도 다 공개토론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목마르게 바라마지않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 그 광주의 옛 도청 자리에 세우고자하는 문화의 전당, 문화의 전당을 감싸는 ‘빛의 숲’은 광주 전남 시도민이 아니라도 뜻있는 사람 모두의 희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도청에 세우는 ‘문화의 전당’에서 ‘5월의 넋’을 삭제하고도 제대로 된 문화일까? ‘문화의 전당’의 브랜드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5월 정신’ 아닌가?
남들은 없는 사실도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 쓰는데 왜 우리는 세계적인 핵심 브랜드를 없애려고 들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한 성형수술인데 그로 인해 생명을 잃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아무리 물어봐도 아무 대답이 없다.
60년 전 내가 초등학생일 때 교과서에서 읽고 감동한 ‘네덜란드 무명 소년’ 얘기가 생각난다. 알아보니 지금의 40대들도 읽었다고 한다.
육지의 1/5이 바다보다 낮은 간척지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풍차를 이용하여 제방 너머로 물을 퍼낸 자리에다 마을을 이루고 산다. 어느 바람 부는 날 소년은 이웃 마을에 부모님 심부름을 다녀오게 되었다. 날은 저물고 비바람은 몰아치는데 제방 밑 길로 바쁜 걸음 재촉하는 소년의 귓가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제방에 작은 구멍이 생겨 물이 졸졸 새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손으로 막고 소리쳐 사람을 불렀다. 그러나 비바람과 파도소리에 묻혀 버렸다. 구멍은 조금씩 커지고 손으로 막을 수 없게 되자 몸으로 막았다. 소년은 지쳐갔고 추위에 체온은 점점 내려갔다. 안타까운 시간은 흘렀고 기다리던 부모님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횃불을 밝혀들고 찾아 나섰다. 드디어 소년을 찾았는데 그는 온 몸으로 제방에 달라붙어 구멍을 막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제 한 몸을 바쳐 제 부모형제와 이웃을, 더 나아가 제 조국을 지켰다.”
지금 그 제방위에는 아름다운 소년 동상이 서 있고 온 세계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광객이 그를 기리고 있다. 그런데 3년 전에서야 안 사실인데 ‘네덜란드 무명 소년’은 지어낸 얘기라고 한다. 심지어 이 이야기는 미국의 작가 ‘마리 메이프스드지’의 ‘한스 브링카’라는 동화에서 지어낸 소년의 이야기가 네덜란드로 건너가면서 실존 인물처럼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마리 메이프스드지가 쓴 한스브링커라는 동화
스파른담이라는 작은 마을에 세워져 있는 소년의 동상
지어낸 옛 얘기를 사실인 것처럼 꾸며 사람들 마음을 아름답게 일깨우고 오래도록 기릴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관광 상품으로도 이용한다니 참 대단하다. 한반도의 1/5이 채 못되는 국토에, 강대국들로 부터 숱한 침략과 압박을 받아온 네덜란드가 오늘 날 세계적 문화 경제 강국이 된 데는 다 까닭이 있음을 알 수 있다. Korea를 모르는 사람도 1980년 5.18민주민중항쟁은 안다. 군부 파쇼의 학살만행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영령을 잊을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겐 없다. 살아남은 죄 값을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한다. 남들은 없는 사실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쓰고 있는데 우리는 5월의 혼이 담겨진 유적마저 인멸하려 들다니, 세상에 어찌 이럴 수가 다 있는가!
국회에 달려가 이 지역 출신 의원님들을 찾아 호소한 적이 있는데 몇몇 의원님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뜻밖의 반응을 보았다.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연설을 상기해 드린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과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냥 도청을 비워주게 되면 우리가 싸워온 그동안의 투쟁은 헛수고가 되고, 수없이 죽어간 영령들과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불의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웠다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남깁시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사는 길, 자랑스러운 기록,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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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 2009/07/14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이번정권 아주 전라도 씨를 말려버리려고 하는군요.
고등학교 국사책에 일제시대는 무한한 영광의 시기였으며
5.18은 빨갱이 반동이라고 기술될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씁쓸하네요
특정지역이라기 보다는....민주주의와 평등 평화 인권이 518유적과 함께 사라지게 되지않을까 걱정입니다.
김구 주석과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일제 강점이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정권 들어서 득세하고 있습니다. 걱정만 할게 아니라 정신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막나가는군요. 2009/07/15 0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예전힘을 되찾고 싶은가 봅니다.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군요.
정확하고 예리한 지적이시긴 한데... 자극적인 언어만 아니면 절대찬성입니다. 아무리 정의로운 생각이라도 표현이 좀 그러면 곤란하겨든요? 그렇죠?
원래 그런놈 2009/07/15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것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비극은 끝내야 합니다.
이기는 정의라야 합니다.
이 어둠이 지나면 아침이 옵니다.
그러나 역사의 아침 햇살은 땀과 눈물로 준비해온 사람들에게만 비춥니다.
산/들/바람 2009/07/20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예전 5.18이야기 연재를 계속 읽어보고 싶었는데
요즘 다른 일들이 많아서 쓰지 못하시나 봅니다.
옛 전남도청을 지키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팔 거들기 위해 나선 선생님께 수고를 끼친 저희들이 부끄럽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